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LG 트윈스 (문단 편집) == 구단이 모기업 이름을 바꾸다 == 사실 [[LG그룹]]은 [[KBO 리그]]에 더 일찍 참가할 수도 있었다. [[MBC]]가 추진하던 프로야구 창설 TF에서 [[LG그룹|럭키금성그룹]]에 "부산·경남지역 연고 프로야구단을 만들지 않겠느냐"는 의사를 타진했다. [[구자경(기업인)|구자경]] 당시 럭키금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LG그룹 오너 일가는 모두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이다.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3세대 경영인 형제들도 모두 [[부산광역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게다가 [[LG그룹]]의 뿌리이기도 한 락희화학 공업사 공장이 부산 온천동에 있기도 했다. 이 때 당시 외유 중이던 구자경 회장 대신 이헌조[* [[LG전자|금성사]] 창업 멤버로 우리나라 전자산업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12월에 별세.] 럭키금성그룹 기획조정실장이 "지금 오너가 부재중이니 돌아오신 후에 협의 후 확답하겠다"며 답변을 미뤘고[* 2000년대 이후에야 휴대폰으로 전화 통화나 메신저 등으로 세계 어디서든지 연락이 가능하지만, 이때는 휴대폰 해외로밍은 커녕 [[삐삐]]보급조차도 제대로 안되던 시절이었고, 휴대폰 해외로밍도 2000년대 들어서야 가능했다.], 당시 KBO는 프로야구 창단 목표일까지 시간이 촉박했던지라 서울 연고를 고집하던 [[롯데그룹]]을 부산으로 보내버리며 프로야구 원년 연고지 배치를 마무리지었다. 이후 구자경 회장이 귀국하여 이헌조 실장으로부터 그런 일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자 무릎을 치며 '''"이 문디야, 그냥 하겠다고 받아 들였어야 안카나!"''' 라며 이 실장을 나무랐다고 한다. [[능성 구씨]] 집안 가풍상 아랫사람을 나무랄 때도 조용히 타이르는 식이었고 구자경 회장 또한 성품이 온화했다는 이야기를 감안한다면 이 당시 프로야구단 창단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구 회장이 상당히 격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대기업의 상하조직 구조상 실장이 회장의 승낙없이 단독으로 실행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알겠지만 프로구단의 운영이란게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사업이라 윗선의 승락없이 움직였다간 비용때문에 책임자가 문책으로 목이 달아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KBO 리그]]는 구단주 회의로 대표되는 대기업의 카르텔 구조이기 때문에, 한 번 때를 놓치면 마음대로 참여할 수도 없다[* 그 돈 많던 [[현대그룹]]이 프로야구단을 만들려고 하자 8개 구단주들의 반대로 [[현대 피닉스|새로운 리그를 창설할 뻔]]한 일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꿩 대신 닭격으로 만든것이 [[FC 서울/럭키금성과 LG 시절|럭키금성 황소]]였다는 후문. 당시 럭키금성그룹은 (주)럭키(현 [[LG화학]]), (주)금성사(현 [[LG전자]]) 양대 주력사를 주축으로 계열사 이름도 럭키xx, 금성## 식으로 일관성이 없었다. 럭키금성이라고 그룹명을 사용한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로, 그 이전에는 그냥 럭키그룹이었다. 그룹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기업이 '락희화학공업사-(주)럭키-LG화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상대적으로 나중에 창업한 금성사가 주력으로 같이 부각되면서 이같이 부르게 된 것. 그러나 MBC 청룡을 인수하면서 럭키금성은 너무 길고, 줄여서 럭금은 어감이 별로라는 이유로[* 구자경 당시 회장이 '럭금'이라고 축약해 부르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팀명을 럭키의 L과 금성의 G를 합쳐서 LG로 정하게 되었다.[* 그룹에서는 1984년 그룹 계열 광고회사 [[LG애드]]에서 'LG'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소비자들에게 LG라는 브랜드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럭키금성그룹에 인수된 코리안익스프레스 카드가 [[LG카드]]로 이름을 바꾼 직후부터다.] [[LF|반도패션]], [[GS칼텍스|호남정유]]도 LG로 바뀌면서 명칭을 LG패션(현재는 그룹에서 분리), LG정유(현 [[GS칼텍스]])로 통일했다. 또한 럭키금성 시절엔 편의점 이름을 LG25 (현 [[GS25]]) 라고 한 적도 있었다. 이후 LG 유니폼이 바뀐해인 1994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야구단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야구를 좋아하는 구본무 회장이 크게 기뻐하면서 그 다음해 그룹명을 정식으로 '''LG'''로 확정했고 '''[[뚝섬 돔 경기장]]'''을 지을 계획도 세우기까지 했다. '''구단이 그룹 전체의 이름을 갈아버린 셈이다.''' 또한 1984년 창단된 프로 축구단 럭키금성 황소도 LG 치타스(현 [[FC 서울]])로 이름을 바꾸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참고로 LG 트윈스 창단작업 때 만든 로고는 이후 편의점 체인인 계열사 LG25에서도 사용하게 되어 GS그룹으로 분리되어 [[GS25]]로 바뀌기 전까지는 매년 수익의 일정 %를 LG트윈스에 로열티로 지급했다. 그러나 LG그룹에서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미 1984년에 그룹 계열사인 LG애드가 발족한 것을 보면 장기적인 프로젝트였을지도 모른다. 2007년에 발간한 LG 60년사에서는 야구단이 그룹 이름 변경에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이 '''단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다.''' 다만 최초는 LG애드나 [[LG카드]]에게 내어줬을지언정, LG라는 그룹명이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선 것은 90년대 초반 LG트윈스의 공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G 그룹이 야구단을 자신들의 가장 큰 홍보 수단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2017년 구단 CI와 워드마크가 바뀐 것으로도 볼수 있는데 [[송구홍]] 단장이 밝힌 바로는 2017년 LG 그룹 70주년을 기념해 변경한 것이라고 한다. 송구홍 단장이 "그럴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라며 얼버무리긴 했지만 자신이 단장으로 부임하기 이전부터 준비되어온 작업이었다라고 밝힌 것으로 보아 그룹 윗선에서 직접 개입했을 확률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